암탉이 위에서 집권하고 간신이 아래에서 권력을 농단하니 나라는 점차 망한다.
이 어찌 한심한 일이 아닌가!
1549년 가을 조선 한양 양재동에 붙은 살육의 화신 문정왕후를 비난하는 벽보이다.
우리에게 송강(松江)으로 잘 알려진 정철은 명종의 소꿉놀이 친구이기도 하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대학자 이율곡이 동시대에 살았고 피 튀기는 혈전을 벌이는
동인과 서인의 당파 싸움이 조선강토를 물들이고 있을 때이다.
동인과 서인의 당파싸움에 화합을 종용했던 이율곡도 동인의 모략에 빠져 고향에서
마흔 아홉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율곡을 옹호하는데 앞장섰던 정철도 이듬해 담양으로 낙향하고 말았다.
이때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지었다.
그때 지은<속미인곡>의 일부이다.
아! 허사로다 임은 어디로 갔는가!
잠결에 일어나 창을 열고 바라보니
가엾은 그림자만 나를 따를 뿐이로다.
차라리 죽어져서 낙월이나 되어서
임 계신 창 밖에 훤하게 비치리라
각시님 달은 그만두고 궂은비나 되소서.
원래 사미인곡은 초나라의 굴원이 지은
이소(離;떼어놓을이, 끊을이, 騷;떠들소. 근심하다)를본받아 지은 것이다.
굴원은 초나라의 애국자이다.
그가 모시던 회왕이 간신배들의 모략에 빠져서 진나라로 건너가 3년만에 죽고 만다.
이때 그의 아버지를 죽인 원흉이 바로 아들인 자란이었다.
자란은 철저한 진나라편인 천진파의 수장이었다.
굴원은 회왕이 진나라로 가려하자 급하게 말을몰고 만류하였다.
그러나 자란과 간신배들에 둘러쌓인 회왕은 말을 듣지 않고 진나라에서 객사를 하였다.
하늘을 울부짖던 굴원은 결국 멱라강에 몸을 던졌는데 이 날이 5월 5일이다.
송강 정철에 대한 재미난 일화가 있다.
선조임금이 워낙 술을 좋아하는 송강을 위하여 술을 줄이도록 은으로 만든 술잔을 하사하면서
“하루에 딱 한잔만 마시도록 하라.”는 어명을 내린다.
송강은 꾀를 내어서 장인을 불렀고, 그 장인은 은잔을 큰 사발크기로 만들었다.
술을 좋아하는 송강이 지은 <장진주사>는 바로 술을 권하는 시이다.
한잔 먹세그려 또 한잔 먹세그려
꽃 꺽어 셈하고 무진무진 먹세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 덮어 졸라매어 지고 가나
화려한 상여에 만인이 울며 가나
억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 속에 가기만 하면
누른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 쌀쌀한 바람 불 때 누가 한잔 먹자 할꼬
하물며 두덤 위에 원숭이 휘파람 불 때 뉘우친들 무엇하리
술을 좋아했던 송강에게 가했던 간신들의 모략은 임금에게 고하기를
“송강은 술고래이고 감정적으로 치우치는 인물이고, 중책을 맡기면
나라에 해가 될 위인이기에 축출해야 합니다.”고 임금에게 중상모략을 가한다.
정철과 이율곡은 국가와 백성을 위한 애국자였다.
조선의 이 당시 왕은 명종을 지나 임진왜란으로 전 조선이 쑥대밭이 된 선조임금이다.
초나라의 굴원 또한 지극한 애국자였다. 그 당시의 초나라 왕이 회왕이었다.
여기에는 2가지 공통점이 있다.
선조임금은 충신의 말을 듣지 않아서 온 국토가 유린되는 임진왜란의 참상을 겪었다.
초나라의 회왕은 천진파의 수장인 아들 자란과 그 주위 간신배들의 중상모략에 빠져서
진나라에서 죽고 만다.
역사가 과연 본질적 정의나 가치로 진실을 추구할 수 있는가.
정의가 때로는 부정의에게 패배를 당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끝까지 정의를 추구하려는 본질적 정신이 있다.
이것이 하늘의 뜻이다.
과거 역사 속에서 비정의가 정의를 이겼을 때는 온갖 권력에 아부하는
기생충들이 주위에 포진해 있을 때이다. 왕권시대에나 가능한 일이다.
현실의 역사는 모든 국민이 매스미디어를 통하여 상황을 공유하는 시대이다.
과거 왕권의 역사에서 암탉이 권력을 손에 쥐고 있을 때 그 암탉 집안의 온갖 친인척들이
백성의 고혈을 쥐어짜고 온갖 패악을 저질렀어도 권력이 승계되면 비정의가 정의가 되었던 역사이다.
지금 이 역사를 만들어가는 현대판 미친년 하나와 그의 서방 놈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고소의 대마왕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이 ○○이라는 자이다.
더불어 사악한 양심으로 혁명판을 분열한 짬의 노가리는 모략중상의 달인 간신배와 무엇이 다름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