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생각하는 '성사재인'의 의미, 거기서 파생되는 문제점
"크고 작은 일을 물론하고 신도(神道)로써 다스리면 현묘불측(玄妙不測)한 공을 거두나니 이것이 무위이화(無爲以化)니라.
내가 이제 신도를 조화(調和)하여 조화정부(造化政府)를 열고 모든 일을 도의(道義)에 맞추어 무궁한 선경의 운수를 정하리니
제 도수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
선천에는 모사(謀事)는 재인(在人)이요 성사(成事)는 재천(在天)이라 하였으나
이제는 모사는 재천이요 성사는 재인이니라." (4.5)
-2002/1/16/ 긴급명령 14호
'도수'란, 상제님이 짜놓으신 개벽역사의 이정표다.
'이것(도수)'를 바르게 '해독'해서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으로 들어서는 것이 일꾼이 되는 것이며, (이런 사람이) '상제님의 일꾼'이다.
'일꾼'이란, 천지일을 하는 사람, 당신의 말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너희들이 믿음을 주어야 나의 믿음을 받으리라...
-2005/7/29/ 제96주 상제님 어천치성
[성사재인의 참뜻]상제님 진리에서 볼 때 ‘성사재인’이란 상제님의 새 역사 이정표인 천지도수를 역사 속에 뿌리내리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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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두 차례 말의 내용을 근거로, 그가 생각하는 '성사재인'을 요약해서 표현해 보면 이렇습니다.
"'성사재인'이란, 증산상제님께서 천지공사를 통해 미래 인류역사의 이정표로 짜신 '천지도수'를, 천하사를 하는 일꾼이 바르게 '해독'해서 현실에 실현하는 것이다."
어떻습니까? 성사재인의 의미를 바르게 표현한 것 같죠?
한데, 이 정의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천지도수를 해독하는 존재가 일꾼’이란 이 명제에서 말입니다.
해독한 내용을 가지고 이것이 상제님의 뜻이다, 이것이 상제님의 공사다 하고 현실에 실현을 하는데, 이 '해독'이란 것이 언제나 정확하게 됐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불완전한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과 행동의 뜻을 정확하게 해독한다는 게 이게 쉬운 일이겠습니까?
[도전]에 '천지공사' 편에 상제님의 일꾼이라고 하는 우리가 봐도 해독이 안 되는 것이 수두룩합니다.
그는 김호연성도의 많은 증언 중에서도 해독이 불가한 것은 [도전]에 제대로 싣지 못하였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토록 이 '해독'이란 것은 어렵고 언제나 불완전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아무리 과학적인 실험을 거쳐 결과를 도출했어도 법칙으로 굳어지기 전까지 무수한 ‘이론’이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그동안 [도전]이 나오기 전까지는 상제님의 도수가 부족해서 개벽의 지도를 제대로 그릴 수 없었다. 그린다 해도 반쪽지도 가지고 암호를 해독하는 격이었다. 그에 대해서 아무리 시비를 걸고 넘어져봤자 그 자체가 성립이 안 됐다." (20040517 조례)
그간 과거 자신이 행한 도수해독은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의 아버지 또한 이렇게도 말했지요.
“천지의 이치라 하는 것은 거짓이 없는 것이다. 자기네들이 잘못 해석하고 그럴 뿐이지, 천지의 진리가 어떻게 거짓말을 하나. 아니, 하늘땅이 둥글어 가는 생장염장 춘하추동 사시 동서남북 24방이라는 게 어떻게 거짓이 있나. 모르고 잘못 해석을 했으니 자기네들에게 잘못이 있을 뿐이지, 천지를 나무라고 때를 나무라고 진리를 나무라는가. 아, 제 자신이 진리 속에서 생겨나고 죽고, 물도 마시고 산소 호흡도 하는 것이다. 그것은 영원불변한 이치다. 그걸 제 생각하고 맞지 않는다고 해서 속았다고 생각하는가? 누가 속였나, 누가?
천지는 무엇이고 속이지 않는다. 미물곤충까지도 천지는 속이지 않는다. 제 생각에 도취를 당해서 제가 제 생각에 속고 제 지식에 속는 것이다. 제 스스로 기만하고 저한테 속임을 당하고. 이렇게 알아야 바르게 아는 것이다.“ (월간개벽 2010년 3월호)
해독의 오류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는 지난 사오미에 이런 말을 했지요.
“지금 이것을 뭐 상제님 진리 사오미개명을 못 믿으면 그 사람은 신앙을 안 하는거니까, 내가 오늘 다시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는 거여. 그런 사람은 신앙을 그만 둬라.” (2002.11.17)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사오미에 대한 명제는 사실이고 진리에 근거한 게 맞지요.
한데, 그것을 해독한 건 사람인 자신입니다.
‘불완전한 자신이 해독을 한 것을 상제님 진리와 부합하는 것이니, 내가 해독한 이 ‘사오미 개명’을 믿지 못하면 신앙을 안 하는 것이다. 즉 상제님을 믿지 않는 것이니, 신앙을 그만두고 나가라.’
이 말입니다.
자신의 말이 어째서 상제님 말씀과 똑 같은 것입니까?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을 어찌 상제님을 믿지 않는 것으로 단정합니까?
자신의 말이 진리가 아니니, 그간 00도 역사에서 사오미개명으로 결론적으로 세 번이나 거짓말을 쳐 온 것입니다.
두 번 틀리는 건 그렇다 쳐도 세 번째 틀렸을 때는 이거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데 네 번째 나와서 “이번은 진짜거든. 이번은 진짜거든. 진짜라고! 진짜야 진짜 이번에는.”(2013.9.7)
이렇게 네 번째 똑같이 해대는 이 말을 도대체 어떻게 믿습니까?
그래서 상제님의 천지공사 도수를 해독하는 자는, 항상 겸손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 해독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언제나 염두에 두고, ‘정도에 맞게’ 일을 진행시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서 대세를 돌려잡겠다고, 곧 개벽된다고, 전쟁 터진다고 시두 터진다고 신도들 조급하게 만들고, 위기, 공포분위기 조성하고 그렇게 편법으로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때는 그 때가 있고, 일은 그 일이 있고, 사람은 그 사람이 있다"고 했지요.
상제님의 천지공사란, '어느 때 어떤 일을 어떤 사람이 하도록 이정표, 계획표를 짜신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쉽게 알 수 있는 듯한 도수가 있는가 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그 해독이 불가하거나, 이렇기도 하고 저렇기도 한 도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상제님은 이 천지공사는 신도에서 선행한다고 하셨지요. 신도의 신명과 인간이 합일이 되어서 현실에 펼쳐낸다고.
또한 나아가서 "운수를 열어 주어도 이기어 받지 못하면 그 운수가 본처로 돌아가기도 하고, 또 남에게 그 운수를 빼앗기기도 하느니라."라고 도 하셨습니다.
즉 상제님은 신도를 조화하여 어느 시간 때에 어떤 일이 벌어지도록 도수를 짜 놓으셨는데, 그 도수 그 운수를 어느 사람에게 부여했어도 그가 이기어 받지 못하면 그 도수는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가게도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상제님께서 도수를 짜셔서 그 일을 맡은 사람이 그 도수를 현실에 이화하는 데 있어, 제대로 역할을 못하면, 다른 사람이 나타나서 그 도수를 실현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태모님께서도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은 이 세상에서 누구하나 알게 하시는 줄 아느냐.
천부지(天不知) 신부지(神不知) 인부지(人不知) 삼부지(三不知)이니, 참종자 외에는 모르느니라.
선천 운수 궁팔십(窮八十) 달팔십(達八十)이요
지금 운수 동지(冬至) 한식(寒食) 백오제(百五除)니라.
후천 창생 되기도 어려우니 살아 잘되기를 바랄지라.
내 일은 되어 놓고 봐야 아느니라.
일은 딴 사람이 하느니 조화 조화 개조화(改造化)라."(11:250)
결론은 "내 일은 되어 놓고 봐야 아느니라."입니다.
대략적인 큰틀에서 ‘이 도수는 이런 것이다’라고 말을 할 수 있는 있습니다.
한데, 그것을 절대 불변의 100% 맞는 것이다 라고 단정을 해 버리면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거기서 오류가 있는 도수해독 내용을 정도에서 벗어나 편법으로 행하려 하면, 그간 00도 역사에서처럼 신도들에게 그리고 사회에 대해악을 펴게 되는 것입니다.
저~기 태모님의 말씀 “후천 창생 되기도 어려우니 살아 잘되기를 바랄지라.”라는 이 말이 왜 이렇게 크게 와닿지요?
우리 신도들은 그 어려운 후천 창생 되자고, 현실의 잘되는 삶을 포기 하고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