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을 달다가 얘기가 조금 길어질것 같아서 처음으로 본글에 올려봅니다.
우선 도통에 대해서 얘기해 보도록 하지요.
도통. 참 좋지요. 조선 역사상 구도자이거나 일반 민중 그리고 수많은 사기꾼들에게도 아주 훌륭한 먹이감이고 그야말로 욕망의 결정체이고 그로 인하여 수많은 문제가 생겨나고 아직도 전혀, 조금도 진전이 없는 개념이지요.
우선 진주에 대한 글을 읽다가 이 얘기를 시작합니다.
저쪽 딴전씨가 올해 도통을 내려 준다면서요?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내려준다고요?
도통이 무엇이고 어떠한 경지 혹은 상태인지는 다들 생각해 보셨습니까?
개념 정리부터 하겠습니다.
J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도통은 두가지로 사용합니다.
도통(道統)과 도통(道通)입니다. 같은 도통이냐구요? 절대 아닙니다. 전자의 도통(道統)은 도를 다스리는 개념입니다. 이 통(統)자는 대통령의 그 통(統)자입니다. 후자의 도통은 통(通),입니다. 이는 말 그대로 개인적인 깨달음의 경지를 표현합니다. 통(統)은 정치적이고 관계의 개념이고 다스림의 개념입니다.
도통(道統)은 단언하건대 천상천하 유일하게 오직 상제님에게만 적용되는 개념입니다.
도(道)라는 것을 우주의 존재원리, 불변하고 유일무이하고 절대불변의 원리로 이해하면 그 절대적인 진리를 주관하고 운용하는 분은 오직 상제님뿐입니다.
도는 우주 자체이고 스스로의 존재원리입니다. 상제님께서도 천지일월과 함께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서양의 기독교나 이슬람과 다른점이 상제님은 유대교의 여호와적인 일방창조가 아니라 당신님께서도 이 우주와 더불어 같이 하신다고 말씀하셨고 당신님의 모든 행적과 천지공사도 그 사상에 바탕을 두고 집행하셨습니다.
자, 다음의 도통(道通)은 순수하게 각 개별적인 존재에게 주어진 나아갈 바 묻 생명체의 궁극적인 지향점인 것입니다.
상제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잘 수련하면 나와 같이 되리라.”
아니 인류 역사를 통털어 이보다 더 가슴뛰고 희망적인 사건이 있었습니까?
상제님은 인간 한계의 벽을 활짝 여시어 그 무한한 경계를 확장해 주신 분입니다.
도전이든 대순전경이든 뭣이던지 상제님의 언행과 행적을 잘 살펴보십시오. 개벽이니 괴질이니 상씨름이니 이 모든 것들은 그 하위개념입니다.
상제님이 사람들을,뭇 생명들을 죽이려 오셨습니까. 상제님의 흐느낌이 들리지 않습니까? 살려내자 살려내자고 하시는 태모님의 하소연이 들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 딴전씨는 그 모든 것을 엉덩이에 깔고 않고서는 호가호위하면서 자기가 마치 도통을 주고 신도들과 천지 생명들의 명줄을 쥐고 있는 절대 판관처럼 행동하고 있네요.
J판에서는 대두목에 관한 끊임없는 논쟁과 그 진위 여부가 최대의 화두로 항상 문제가 되어 왔습니다.
여러분 . 대두목이 뭡니까? 대두목이 우리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습니까? 정말 그렇나요?
상제님이 그런 권한을 대두목에게 줬나요? 진정 그렇게 믿으십니까? 만일 그리 생각한다면 심각한 오류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대두목도 상제님의 일개 일꾼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선 결론을 내리면 대두목의 도통은 우리들과 꼭 같은 도통(道通)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국가로 말하면 대통령에게서 위임을 받은 국무총리쯤 된다고나 할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총리가 일을 잘 못 하면 그냥 해임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더욱 간과하고 있는것이 인간 역사가 한 개인의 일이 아니고 수 십억의 인류와 그 수만배에 달하는 신명과 기타 생명들을 고려할 때 이는 시스템의 문제이지 어떤 한 개체, 대두목이란 존재가 좌지우지 할 수 없는 일이고 또 그리 될 수도 없습니다.
한 조그만 중소 기업도 사장 혼자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지 못합니다. 하물며 대 우주적인 사안에 있어서야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상제님조차도 공사를 처결하실 때 관계되는 신명들을 불러서 의견을 들으시고 공리적인 편벽됨이 없이 처리하시고 더욱이 사후 검증까지 받으셨는데 아니 저 사기집단의 수괴는 지가 도통을 준다네요.
그 사람은 언제부터 상제님 상투꼭지에 올라갔지요?
자 다음으로 넘어가서 개인의 통(通)에 대해서 얘기해 봅시다.
저는 물론 전혀 통한바도 없고 생각해 볼때 이렇게 술을 먹어대서는 뭐 거의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저 딴전씨는 통했나요? 보통 뭘 내려준다는 표현을 쓸 때는 자기가 이미 그 경지에 도달해 있고 넘쳐 날 때 내려 준다는 표현을 씁니다.
“ 아, 나 돈이 너무 많아 주체를 못 하겠어. 너 좀 줄게.” 뭐 이렇게.
돈이야 가진 능력을 발휘하고 세상 흐름에 맞으면 많이 벌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도는 어떤가요?
도(道)는 생명 그 자체입니다. 누가 줄 수도 없고 뺏을 수도 없는 그 개별 존재의 궁극적인 생명과 깨달음의 총채입니다. 이는 부모자식간에도 양도할수 없고 계산될 수도 없는 그 무엇입니다.
누가 주고 말고 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저 위대한 딴전씨는 그걸 준다구요? 아이구 황망스러워라.
재미있는 얘기 한토막입니다. 그 옛날에 할배가 아주 핵심 신도 세명에게 개안을 시켜줬다는 소문이 한때 돌았습니다. Y모,Y모등 세명이지요.
우리가 흔히 알기로는 도통에는 노력통이 있고 감화통이 있다고 배웠습니다.
이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 그때 소위 개안 받은 신도들은 지금 뭐하고 있습니까?
그 중 한명을 저는 잠시 겪어 봤습니다. 한 마디로 개뿔. 이 얘기는 다음에 기회가 있을때 다른 주제로 얘기하기로 하고 저는 인생을 그렇게 잘 살지 못 한것 같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스스로의 판단을 신뢰하고 아직까지 큰 실수없이 살고 있습니다.
판안의 여러 신도님들 제가 항상 하는 얘기지만 아주 쉽게 초등학생도 수긍할만한 기준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도통은 수행을 많이하거나 뭐 태을주를 백만독한다고 되는것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도라는 근본 개념이 맞다면 마땅히 그에 이어지는 논리로 도통은 인간 개인의 종합예술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 역사에 흐르는 사랑과 봉사 인류애 그리고 역사를 꾀뚫어 내려온 도덕적인 문제 또 맑은 정신과 신도세계에 대한 이해와 겸손함 등등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진 결과로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올해 도통을 내려 준다는데 만일 올해가 지났는데도 현재의 모습 그대로라면 여러분들은 어쩔 생각이십니까? 우리가 그토록 겪었던 그 사오미 다 채우고 또 신유술 그리고 또 그 다음 사오미로 넘어가시렵니까?
진주 얘기가 나와서 한마디 해 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다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아니 정말로 올해 도통한다면 제가 찾아가서 축하를 드리겠습니다.
아니 인간 역사에 이보다 더 축하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 판도 저 판도 없습니다. 누구든지 잘되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일요일 밤입니다.
다들 편한 밤 보내시고 내일 또 힘 찬 하루를 시작합시다.
옛날 신도가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