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이상국전집 제2권 고율 시
늙은 무당
내가 살고 있는 동쪽 이웃에 늙은 무당이 있어
날마다 많은 남녀들이 모이는데,그 음란한 노래와 괴상한 말들이 귀에 들린다.
내가 매우 불쾌하긴 하나 몰아낼 만한 이유가 없던 차인데,마침 나라로부터 명령이 내려
모든 무당들로 하여금 멀리 옮겨가 서울에 인접하지 못하게 하였다.
나는 한갓 동쪽 이웃에 음란하고 요괴한 것들이 쓸어버린 듯 없어진 것을, 기뻐할 뿐 아니라 또한 서울 안에 아주 이런 무리들이 없어짐으로써 세상이 질박하고 백성들이 순진하여 장차 태고의 풍속이 회복될 것을 기대하며, 이런 뜻에서 시를 지어 치하하는 바이다.
또 밝혀 둘 것은 이 무리들도 만약 순진하고 질박했다면 어찌 왕경(王京)에서 쫓겨났겠는가.
결국 음란한 무당에게 의탁하기에 쫓겨나게 된 것이니 이는 스스로가 불러일으킨 것인데
또 누구를 허물하랴.그리고 남의 신하 된 자도 마찬가지다.
충성으로 임금을 섬긴다면 종신토록 잘못이 없을 것이나,요괴한 짓으로 민중을 미혹시킨다
면 곧 그 자리에서 실패를 당하리니, 이치가 본래 그런 것이다.
昔者巫咸神且奇 競懷椒糈相決疑
옛날에 무함은 신기로웠기에 모두들 산초랑 쌀이랑 바치고 의심을 풀었지만
*무함: 중국 건국 신화에 나오는 황제(黃帝) 때의 신무(神巫)인 계함(季咸)의 준말.
自從上天繼者誰 距今漠漠千百朞
그가 하늘에 오른 뒤엔 계승한 자 누구던가, 천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득하기만 하구나.
肹彭眞禮抵謝羅 靈山路夐又難追
힐,팽,진,례,저,사,라, 일곱 무당은 영산이라 길이 멀어 추적하기도 어렵고
-산해경(山海經)에 “천문의 해와 달 들어가는 곳에 영산이 있는데 거기에 무힐(巫肹)ㆍ무팽(巫彭)ㆍ무진(巫眞)ㆍ무례(巫禮)ㆍ무저(巫抵)ㆍ무사(巫謝)ㆍ무라(巫羅) 등 일곱 무당들이 살고 있다.” 하였다.-
沅湘之間亦信鬼 荒淫譎詭尤可嗤
원수 상수 사이엔 역시 귀신을 믿어 황당하고 음란하고 속이고 거짓말함이 더욱 우스웠지.
海東此風未掃除 女則爲覡男爲巫
우리 고려에도 아직 이 풍속이 남아있어 여인은 무당 되고 남자는 박수가 되네.
自言至神降我軀 而我聞此笑且吁
그들은 자칭 신이 내린 몸이라 하지만 내가 들을 땐 우습고도 서글플 뿐이다.
如非穴中千歲鼠 當是林下九尾狐
굴속에 든 천년 묵은 쥐가 아니라면 틀림없이 숲속의 아홉 꼬리 여우일레.
東家之巫衆所惑 面皺鬢斑年五十
뭇사람들이 의혹하는 동녘 집 무당은 주름진 얼굴 반백 수염에 나이 쉰 살인데.
士女如雲屐滿戶 磨肩出門騈頸入
구름같이 모여든 남녀 문에 가득히 어깨 비비며 목을 맞대어 드나드누나.
喉中細語如鳥聲 㘓哰無緖緩復急
목구멍 속의 새소리 같은 가는 말로 늦을락 빠를락 두서없이 지껄이다가
千言萬語幸一中 騃女癡男益敬奉
천 마디 만 마디 중 요행 하나만 맞으면 어리석은 남녀가 더욱 공경히 받드니
酸甘淡酒自飽腹 起躍騰身頭觸棟
단술 신술에 제멋대로 배가 불러 몸을 추켜 펄쩍 뛰면 머리가 들보에 닿는다.
緣木爲龕僅五尺 信口自道天帝釋
나무 얽어 다섯 자 남짓하게 신주를 모셔 놓은 감실을 만들어 입버릇 삼아
스스로 석가라 말하지만
釋皇本在六天上 肯入汝屋處荒僻
석가는 본래 육천 위에 있거늘 어찌 네 집에 들어가 한구석에 처할 것이며
丹靑滿壁畫神像 七元九曜以標額
온 벽에다 붉고 푸른 귀신 형상을 그리고 도교의 신인 칠원구요로 널조각을 만들어
걸어 놨지만
星官本在九霄中 安能從汝居汝壁
별자리는 본래 먼 하늘에 있거늘 어찌 너를 따라 네 벽에 붙어 있을 것이며
死生禍福妄自推 其能試吾橫氣機
생사와 화복을 함부로 이렇다저렇다 하지만
어찌 우리를 시험 삼아 천기를 거스를 수 있으랴.
聚窮四方男女食 奪盡天下夫婦衣
사방 남녀의 식량 거리 몽땅 거둬들이고 온 천하 부부의 옷 모조리 탈취하도다.
我有利劍凜如水 幾廻欲往還復止
나에게 시퍼런 물 같은 날카로운 칼이 있어 몇 번이나 달려가려다 도로 중지한 것은
只因三尺法在耳 豈爲其神能我祟
다만 지켜야 할 법이 있었기 때문이었지 어찌 그 귀신이 나를 해칠까 봐 못했겠느냐?
東家之巫年迫暮 朝夕且死那能久
동녘 집 무당이야 늙을 대로 늙었으니 아침 아니면 저녁이라 어찌 오래가랴만
我今所念豈此爾 意欲盡逐滌民宇
내가 생각하는 건 이뿐만 아니고 모두를 쫓아내어 민간을 깨끗이 씻으려는 뜻이라오.
君不見昔時鄴縣令河沈大巫使絶河伯娶
그대는 보지 못했던가 옛날 업현 원이 강물에 큰 무당을 빠뜨려 하백이 장가들지 못하게 한 것을
*서문표-전국시대 위나라 사람으로 업현의 현령으로 있으면서 장수 물을 끌어 밭에 대 주니 백성들이 그를 믿고 따랐다. 서문표는 무당이 수신 하백을 장가 보내야 한다면서 마을 처녀를 강물에 던지려고 잡아가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무당을 잡아 강물에 던져 다시는 이런 나쁜 풍습이 없도록 고쳐 놓았다고 한다.
又不見今時咸尙書坐掃巫鬼不使暫接虎
또 보지 못했던가 근래 함 상서가 앉아서 무당 귀신을 소탕해
잠시도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한 것을
*함상서는 고려 명종 때 공부상서를 지낸 함유일을 가리키는데, 그는 일찍이 의종 때 궁에 들어가 교로도감(橋路都監)을 관장하면서 무당들을 교외로 추방하고, 내력이 올바르지 않은 귀신을 모셔 놓은 집을 불지르는 등 미신 타파에 힘썼다.
此翁逝後又寢興 醜鬼老貍爭復聚
이분이 가신 뒤에 또 부쩍 일어나 추한 귀신 늙은 여우가 마구 모였네.
敢賀朝廷有石畫 議逐群巫辭切直
감히 치하컨대 조정에 굳은 계획이 있어 뭇 무당을 쫓아내는 말이 절실하고도 정직하여
署名抗牘各自言 此豈臣利誠國益
이름 밝히고 글을 올려 제각기 진술하되 이것이 어찌 신들을 위해서랴 나라의 이익이라 했네.
聰明天子可其奏 朝未及暮如掃迹
총명하신 천자 그 주청 받아들이사 하루도 못 가서 온 종적을 쓸어버리듯 했네.
爾曹若謂吾術神 變化恍惚應無垠
만약 너희들이 신기롭다 한다면 변화의 황홀함이 응당 끝이 없어야 하겠거늘
有聲何不鐍人聽 有形何不緘人盿
소리가 있을 때 왜 남의 귀를 잠그지 못하고 형체가 있을 때 왜 남의 눈을 꿰매지 못하는가?
章丹陳朱猶謂幻 況復爾曹難隱身
단칠에다 연지를 바르고 환술이라 하는데 너희들은 몸뚱이 하나 숨김이 그리 어렵구나!
携徒挈黨遠移徒 小臣爲國誠自喜
이제 몽땅 도당을 이끌어 멀리 옮겨 간다니 소신으로선 나라를 위해 진실로 기쁘도다.
日遊帝城便淸淨 瓦鼓喧聲無我耳
날마다 노는 제성이 곧 청정하게 되어 북장구 시끄러운 소리 내 귀에 들리지 않으리.
自念爲臣儻如此 誅流配貶固其理
생각건대 혹시 신하로서 이러한 자가 있다면 베이거나 쫓겨남이 당연한 이치일걸세.
我今幸是忘且晦 得接王京無我駭
나야 이제 다행히 쓸모없는 몸일뿐더러 왕경에 접해 있어 놀라게 할 자 없겠지만
凡百士子書諸紳 行身愼勿近淫怪
모든 선비들이여 이 사실을 적어 두었다 부디 음괴한 것을 가까이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