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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8-16 10:53
미국은 어떻게 패권국가가 되었을까?, 중국군 장교들에 관한 소견!
 글쓴이 : 현포
 



미국은 어떻게 패권국가가 되었을까?




1620년에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에 정착한 사람들이 1776년에 건국한 미국은 1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직후인 1918년에는 세계 제1의 강대국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지구상 유일의 패권국이 되었다.

지구상 거의 대부분 패권국가는 패권국가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기존 패권국가와  생사를 건, 장기간에 걸친 투쟁을 전개했다. 그런데 미국은 패권국가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거의 비용을 들이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패권국가로 부상한 이후 소련과 일본의 도전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많은 비용을 소비하지 않았다.


미국은 어떻게 이처럼 단기간에 거의 비용을 들이지 않으면서 세계 최고의 패권국가가 되었을까? 어떻게 오늘날에도 패권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을까? 이는 미국이 자원이 비옥한 방대한 영토를 물려받았다는 사실과, 아메리카 대륙에 미국에 대항할 수 있는 국가가 없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주요 이유는 미국인들이 탁월한 전략적인 식견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미국인들이 이론적 측면에서 우수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수학 분야다. 오늘날 미국은 학생들의 산수와, 고등학생들의 수학경시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적인 수학자, 세계적인 저명 수학 서적을 저술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미국인이다. 미국은 암기가 아니고 초등학생 시절부터 창의적인 능력과 합리적인 사고를 교육시키는 국가다. 이 같은 교육이 바탕이 되어 수학, 과학, 정치학 등 모든 학문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국가안보 문제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객관적인 자료에 입각하여 분석적으로 대안을 제시하는 국가다. 아메리카 대륙에 입주한 이후 미국인들은 영국에서 물려받은 이 같은 전통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켰던 것이다. 


미국인들의 전략적인 식견은 영국에 대항한 독립전쟁 당시부터 나타났다. 미국인들은 영국군에 대항하여 게릴라전쟁을 전개했다. 베트남전쟁에서 목격된 게릴라 전쟁의 원조가 미국인 것이다. 은밀한 곳에 숨어 있다가 영국군을 기습 공격했다. 이 같은 공격에 대항하여 영국군은 미국의 게릴라들을 추적할 수 없었다. 미국이란 대륙이 너무나 넓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아메리카 대륙의 게릴라들에 대항하고자 하는 경우 영국은 본토에서 보다 많은 병력을 동원해야만 하였다. 지구상 도처에서 많은 식민지를 관리하고 있던 영국은 영국본토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던 아메리카 대륙으로 영국군을 대거 동원할 수 없었다. 영국이 마침내 미국의 독립에 동의한 것이다.


독립과 동시에 초대 미국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고립주의 정책을 표방했는데 이는 미국의 최초 대전략이었다. 미국이 유럽의 어느 국가와도 동맹을 맺지 않는 가운데 독자적으로 외교정책을 추구할 것을 표방한 것이다. 이 같은 조지 워싱턴의 정책으로 인해 미국은 유럽 정치에 관여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당시 유럽에서는 점차 전쟁의 마수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이 같은 상태에서 미국은 북미대륙의 영국, 프랑스 식민지 지역을 구입했다. 알레스카를 러시아로부터 구입했다.


어느 정도 북아메리카 대륙을 자신의 영향권으로 만든 시점인 1823년 미국의 5대 대통령 몬로는 '몬로 독트린'을 표방했는데 이는 미국이 아메리카 대륙 전체에 대한 패권을 유지하는 국가가 될 것임을 천명한 것이다. 더 이상 유럽이 아메리카 대륙에 식민지를 만들거나 아메리카 대륙 국가들의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는 정책을 미국이 일방적으로 유럽국가에게 선포한 것이다. 이 같은 정책에 반하여 아메리카 대륙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했던 영국 및 독일과 같은 국가에 대항하여 미국은 최후의 통첩장을 보냈다. 간섭하는 경우 일전도 불사할 것임을 천명했다. 이들 국가의 경우 자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아메리카 대륙에서 미국에 대항하여 싸울 여력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이들 국가는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간섭을 중지했다. 이 같은 상태에서 미국은 멕시코를 침공하여 많은 영토를 빼앗았으며 수에즈 운하를 건설했다. 아메리카 대륙 모든 국가들의 내정에 간섭했다. 결과적으로 아메리카 대륙이 미국의 패권적 영향력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1800년대 말경에서 1900년대 초반 '알프레드마한(Alfred Mahan)'의 해양력 이론에 입각하여 '시오도 루즈벨트'와 같은 미국 대통령은 해군력을 건설하고는 태평양에 눈을 돌렸다. 스페인과의 전쟁을 통해 하와이, 괌, 필리핀과 같은 지역을 점령하면서 미국이 태평양 국가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필리핀을 근거로 1900년대 초반 미국은 중국에 대항하여 문호개방정책(Open Door Policy)을 표방했다. 이 정책의 골자는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미국이 아닌, 다른  패권국가의 부상을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는 오늘날에도 미국의 주요 정책이다. 당시에 이 정책은 모든 관련 국가들이 중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어느 국가도 중국을 분할하여 자국 영향권으로 두지 말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당시 중국 영토는 일본, 영국, 독일 등 여러 국가들이 자국의 영향권으로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이 같은 상태에서 미국이 문호개방정책을 표방했던 것은 중국이 특정 국가의 영향권으로 넘어갈 것을 우려한 결과였다. 중국 진출 측면에서 후발 국가였던 미국 입장에서 보면 중국 정부를 인정한 상태에서 모든 국가가 대등한 입장에서 중국과 무역을 하는 것이 유리했던 것이다.


패권국을 겨냥한 미국의 전략적 시각이 두르러지게 나타난 것은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였다. 당시 미국은 전쟁 당사국들이 사력을 다해 싸운 결과 전력이 거의 모두 소모된 상태에서 전쟁에 참전하여 전쟁의 향방을 바꾸어 놓았다. 낙타 등에 조그마한 것을 첨가했지만 이 같은 첨가가 낙타의 등뼈를 부러뜨리는 효과를 초래한 것이다.


1914년에 발발한 1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참전한 것은 1917년 4월 1일이었다. 1차 세계대전 기간 전반부, 미국은 전쟁 당사국에 대해 중립적인 위치를 고수하면서 양측에 전쟁 물자를 판매하여 많은 이익을 챙겼다. 이처럼 1917년 4월 1일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지만 미군이 유럽 전쟁에 본격적으로 참전한 시점은 1차 세계대전이 종료되기 몇 개월 전인 1918년 이후였다. 이 같은 참전을 통해 미국은 독일군을 중심으로 하는 추축국들을 무력화시켰다. 가장 적은 희생으로 1차 세계대전의 결과 측면에서 가장 지대한 효과를 초래한 것이다.


독일군의 폴란드 침공으로 1939년 9월 1일, 2차세계대전의 서막이 올랐다. 이 같은 2차세계대전에서조차 미국은 초연한 입장을 보였다. 전쟁 국가들에게 물자를 판매하여 재미를 보았다. 이 같은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본격적으로 참전한 것은 일본군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한 1941년 12월 7일이었다. 당시 미국은 영국 편에 서서 전쟁을 수행했다. 이 같은 2차 세계대전에서 또한 미국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2차 세계대전을 통해 미국을 제외한 모든 전쟁 당사국들이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 기존 패권국인 영국이 몰락했으며, 영국에 대항하여 패권을 추구했던 독일 또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1차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은 기본적으로 패권국인 영국에 대항한 독일의 싸움이었다. 이 같은 싸움에서 미국은 처음에는 방관자적인 입장을 보이다가 전쟁 당사국 모두가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었을 당시 참전하여 전쟁 결과를 결정지었다. 살짝 추가한 노력으로 낙타의 등뼈를 부러뜨리는 효과를 초래한 것이다.

이들 전쟁에서의 미국의 전략은 전쟁 당사국들의 싸움을 산꼭대기에서 관전하다가, 양측이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싸움에 끼어드는 것이었다. 고기 덩어리를 놓고 두 마리의 개가 혈투를 벌이는 상황에서 세 번째 개가 등장하여 고기 덩어리를 물고 달아나는 형국이었다. 2차 세계대전을 통해 국력이 쇄진한 영국은 자연스럽게 미국에 패권적 지위를 물려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영국과 동맹국이었던 것이다. 피 한방울 흘리지 않으면서 미국이 패권국 영국으로부터 패권적 지위를 물려받은 것이었다.

이미 1차 세계대전을 통해 미국은 지구상 제1의 패권국이 되었지만 패권을 누려본 경험 부족으로 인해 패권적 지위를 행사하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전후 자국이 패권국가로 부상하는 상황에 대비하여 많은 정책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있었다. 전후 이 같은 대안이 그대로 국제사회에 반영된 것이다.


이미 1946년 미국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동맹국이었던 소련과 대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소련 주재 미국 무관이었던 '조지 에프 케넌'은 소련에 대항한 봉쇄정책을 구상하여 미국에 보냈다. 해군 출신 미 국방부장관 포레스털은 '조지 에프 케넌'의 소련 봉쇄 정책 관련 문건을 모든 미군의 고위 당국자들이 필독하도록 했다. 캐넌의 전략에 입각한 봉쇄정책으로 인해 미국은 거의 피를 흘리지 않으면서 소련을 굴복시킨 것이다.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일본의 부상이 미국 내부에서 심각한 문제를 초래했다. 1987년 당시 일본의 GDP가 미국 GDP의 70%가 되었다. 일본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란 책을 통해 패권적 의도를 노출시켰다. 여기에 더불어 첨단무기에 사용될 수 있는 반도체분야를 선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1985년 미국은 플라자합의를 통해 일본 화폐가치를 대거 높였으며, 1989년에는 슈퍼 301조를 발동시켰다. 이 같은 미국의 노력으로 인해 1991년부터 일본 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들었던 것이다. 이 같은 방식으로 일본의 도전을 굴복시켰다.


오늘날 미국은 중국과 한판을 겨루고 있다. 문제는 전후 소련과의 대립이 군사적 성격이었으며, 일본과의 대립이 경제적 성격이었던 반면, 오늘날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군사적 성격이자 경제적 성격이란 사실이다. 여기에 더불어 소련과 일본이 전략적인 식견이 우수하지 못한 국가였던 반면,  중국은 미국에 못지 않을 정도로 전략적인 식견이 있는 국가란 사실이다. 미중 간의 경쟁이 이전의 어떠한 경쟁과 비교해도 미국 입장에서 버거울 수 있는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오늘날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무역전쟁은 중국을 굴복시키기 위한 패권경쟁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 '중국제조 2025'를 통해 비상을 추구하는 중국의 비상을 좌절시키기 위한 일대 투쟁인 것이다. 


지금까지 논의에서 보았듯이 미국은 철저히 자국 이익 측면에서 전략적인 사고에 입각하여 판단하는 국가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살펴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미국이 계산적이고 전략적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트럼프는 냉전 종식 이후부터 본인이 등장하기 이전까지의 미국의 대북 정책이 실패작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게 된 것이 이 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의 관점에서 보면 클린턴 행정부에서 부시와 오바마를 거쳐 트럼프에 이르는 미국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놀라올 정도로 훌륭한 성격이었다. 이 같은 미국의 일관된 정책으로 인해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시대적 상황에 맞추어 미국은 자국의 대북 정책을 적절히 바꾸어 나갔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오늘날 미국이 있게 된 것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었다. 미국이 전략적인 식견이 우수한 국가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단기간에 오늘날과 같은 수준이 되었던 것도 대통령들이 일반적으로 전략적인 식견을 견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가와 마찬가지로 모든 조직은 조직의 수장이 전략적인 식견을 견지하고 있을 당시 발전하게 된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조직의 수장이 되는 경우 그 조직의 미래는 암울한 것이다.





중국군 장교들에 관한 소견! 


2014-2015년 당시 사드 미사일의 한반도 배치와 관련하여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중국을 방문하여 중국의 전문가들과 토의했다. 이 같은 토의에 항상 등장하는 인물이 중국군 예비역 장군들이다. 이들이 사드에 관한 중국의 입장을 주로 대변했다고 한다. 혹자는 이들이 사드에 관해 아는 것이 무엇이 있다고 그처럼 주장하는가? 의문을 제기했다.

사드 미사일이 한국에서 크게 논란이 되었을 당시 예비역 육군대령 출신  박OO는 사드가 중국 안보와 전혀 관련이 없는데 시진핑이 전문성이 없는 사람들로부터 사드에 관해 보고를 받아 그처럼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언론매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말했다. 이 같은 말을 들으면서 솔직히 필자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한국의 주요 언론매체를 통한 이 같은 보도를 들으면서 중국인들이 한국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손자, 노자, 맹자, 공자 등 무수한 사상가를 배출했다는 점에서 중국의 이론적 전문성이 매우 높은 수준일 것임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필자가 중국의 이론적 수준에 관해 직접 접하게 된 것은 "중국인이 생각하는 미래전"이란 제목의 영어 책을 번역한 1999년 당시다. 국가안보에 관한 모든 자료를 비밀로 취급하고 있는 중국에 1990년대 당시 미국은 투명성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중국인들의 군사적 사고에 관한 자료 공개를 요구했다.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여 중국은 중국군사과학원 소속 장교들이 저술한 많은 글을 미국에 넘겨주었다. 이들 가운데 일부를 미국의 중국 전문가 '마이클 필스버리'가 영어로 번역하여 시중에 출간했다. 필자가 이 책을 번역했던 것이다. 1990년대 당시 중국군사과학원의 경우 한국군 대장에서 소령에 이르는 5,000명 정도의 연구원이 있었다고 한다. 최근 작고한 조선족 출신 조남기 대장이 군사과학원 원장을 역임한 바 있다. 이들 번역을 통해 필자는 중국군의 군사적 전문성이 대단히 높은 수준임을 알 수 있었다,

한편 최근 필자는 중국군 국방대학교 교수 '유명복'이 2009년에 저술한 중국몽(The China Dream)이라는  제목의 책을 읽었다. 그런데 이 책이 중국에서 베스트셀러였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중국인들에게 거의 필독서로 인식되고 있다고 한다. 2012년 당시 시진핑의 중국몽 구상 또한 '유명복'의 상기 책과 관련이 없지 않아 보였다. 이 책을 미국은 2015년에 영어로 번역했다. 먼저 유명복의 해박한 지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유명복이 인용하는 자료의 권위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서 유명복은 미국이 개발을 추구하고 있는 미사일방어체계가 중국에 주는 의미를 언급하고 있었다. '미사일방어체계'로 인해 '중국 입장에서 자국의 핵미사일이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임을 언급하고 있었다. 그런데 2015년 당시의 사드미사일 한반도 배치와 관련한 중국인들의 우려는 유명복이 상기 책에서 언급한 바와 다름이 없었다.


오늘날 중국에서 군의 장교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한 수준이다. 군의 장교들이 국가의 제반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한다. 중국군 고위급 장교들이 민간 수준 전략기획(Strategic Planning)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 사회과학원과 군사과학원 소속 연구원들이 특히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키신저 박사'의 회고록(Memoirs)에 따르면 1970년대 초반 미국에 중국의 문호 개방을 결정한 것은 4명의 중국군 장군으로 구성되는 위원회였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닉슨과 키신저가 미중 교류를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미국으로 하여금 중국과의 교류를 유도한 것은 중국이라고 한다. 미국의 저명 중국 전문가 마이클 필스버리는 "100년 동안 진행되는 마라톤(The Hundred-Year Marathon)"이란 제목의  2015년 서적에서 이처럼 말하고 있다.

1979년 당시 중국의 1자녀 정책을 구상한 사람은 중국군 무기 설계 전문가였다. 1980년 당시 중국의 대전략인 '마라톤 전략'을 구상한 대부분의 사람은 중국군 장교였다. 마찬가지로 이 전략의 진전 정도를 측정하기 위한 기준을 만든 사람도 중국 군사과학원 소속 장교들이었다. "대전략(On Grand Strategy)"이란 제목의 대전략에 관한 중국의 저명 서적을 저술한 사람 또한 군사과학원 소속 장교였다. 중국의 에너지 자원 관리 전략을 수립하는 사람도 중국군 장군이었다. 1986년 당시 중국은 장기적 차원에서의 군사과학및 기술계획을 발전시켰는데 이것을 발전시킨 사람들 또한 중국의 핵무기 과학자들이었다.  그런데 미국과 중국이 국교를 정상화한 1979년 당시 중국에서 중국군 장교들이 수행하는 이들 역할에 관해 알고 있던 미국인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오늘날 중국은 인터넷과 구글을 차단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중국 일반 대학 교수들의 경우 또한 최신 정보를 제대로 접하지 못하는 측면도 없지 않은 듯 보인다. 이 같은 사실을 보면서 서방사회의 사람들은 중국의 국가안보 관련 전문성이 매우 낙후되어 있는 것으로 판단하는 경향도 없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중국에는 중국군 장교들만이 구입이 가능한 서적이 있다. 중국군 장교들의 경우 지구상의 모든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입장이다. 앞에서 언급한 중국군사과학원 장교들이 저술한 논문들은 물론이고, 유명복이 저술한 중국몽이란 제목의 책을 읽어보면 이들이 인용하는 자료의 방대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손자병법을 만든 나라다. 공자, 맹자, 노자 등 많은 사상가를 배출한 나라다. 오늘날 중국에서 이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주로 군의 장교다.

중국 관련 서방사회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에 중국을 공자의 나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중국은 공자의 나라가 아니고 한비자가 말하는 법가주의의 나라라고 한다. 기원전 8세기부터 3세기 사이의 춘추전국시대 당시 중국에서는 손자병법, 책략 등 국가안보와 관련된 많은 서적이 나왔다. 이들 서적은 무정부상태에서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제압한 후 패권이 되기 위한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고 한다. 패권 추구 차원에서 왕권을 강화했다. 무자비한 철권 통치를 추구했다. 부국강병을 주장했다. 오늘날 중국을 이끄는 주요 사상은 공자의 사상이 아니고, 한비자 및 이사와 같은 사람들이 주창한 법가주의라고 한다. 그런데 이 같은 사실을 대부분의 전문가들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한다. 미국이 이 같은 사실을 간파한 것은 1992년 이후라고 한다. '페어뱅크' 등 미국의 저명 중국 전문가들조차 중국을 공자의 나라로 인식했는데 이는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중국에 관해 잘 몰랐다는 사실로 인해 지난 몇 십 년 동안 미국이 많은 과오를 범했다고 한다.    

오늘날 중국군 장교들이 중국의 대전략 등 개념적인 서적을 대거 저술하고 있으며, 이 같은 일을 하는 장교들이 군에서 장군으로 승진하고 있다.

중국군 국방대학을 방문한 2006년 당시 중국군 대교(한국군 준장에 해당)로부터 들은 것이다. 중국국방대학에는 소장급 이상 장군이 30여 명이 있다고 한다. 이들 가운데에는 한국군을 기준으로 소령 또는 중령 신분으로 교육을 받으러 국방대학에 들어왔다가 교수로 잔류하며 성장한 경우도 있지만 한국군의 소위 및 중위에 해당하는 장교들 가운데 선발되어 지속적으로 국방대학교에 근무하며 성장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중국군 장교의 경우 국방대학을 졸업하지 않으면 장군 진급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중국군 국방대학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다리가 하나 있다. 소위 말해 이 다리를 건너가보지 않은 중국군 장교는 결코 장군이 될 수 없다고 한다.

한편 필자는 중국공군이 운용하는 과학기술 분야 학교를 방문한 바 있다. 박사와 석사 과정 장교 3,000여 명으로 구성되는 이 학교는 미 공군의 Air Force Institute of Technology와 유사해 보였다. 그런에 이곳 학교의 학교장은 한국군 준장에 해당하는 대교였다. 이처럼 중국은 국가안보 관련 개념과 논리를 중시여기는 국가다.


국군의 창군 이후 70여 년 동안 대단히 우수한 많은 사람들이 한국군을 거쳐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군은 대전략가, 우수한 군사 이론가를 별로 배출하지 못한 듯 보인다. 한미연합사령부에서 장기간 근무했던 예비역 모 육군 장군은 한국군 장군의 군사적 전문성을 혹평한 바 있다. 한국군 국방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항공기, 전차 및 함정 구입이 아니고 군 장교들의 군사적 전문성을 함양시키는 부분일 것이다. 군사적 전문성이 있는 장교들이 고위직으로 승진하는 제도를 정립하는 일일 것이다.

중국에 안보전문가가 없어 시진핑이 사드 미사일의 한반도 배치와 관련하여 과민 반응했다고 한국의 안보전문가들이 언론매체에서 지속적으로 발언했는데 이는 일대 촌극이었다. 이 같은 촌극이 더 이상 대한민국에서 벌어지지 않기를 기원한다. 한국군이 국가안보 문제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일 수 있기를 기원한다.

한국국방개혁연구소장 권영근  [출처] 중국군 장교들에 관한 소견!|작성자 권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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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포 18-08-16 10:55
 
국가와 마찬가지로 모든 조직은 조직의 수장이 전략적인 식견을 견지하고 있을 당시 발전하게 된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조직의 수장이 되는 경우 그 조직의 미래는 암울한 것이다.
현포 18-08-16 10:55
 
오늘날 중국에서 군의 장교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한 수준이다. 군의 장교들이 국가의 제반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한다. 중국군 고위급 장교들이 민간 수준 전략기획(Strategic Planning)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늘배움 18-08-16 14:46
 
지구상 거의 대부분 패권국가는 패권국가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기존 패권국가와  생사를 건, 장기간에 걸친 투쟁을 전개했다.
늘배움 18-08-16 14:47
 
미국은 암기가 아니고 초등학생 시절부터 창의적인 능력과 합리적인 사고를 교육시키는 국가다.
이 같은 교육이 바탕이 되어 수학, 과학, 정치학 등 모든 학문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늘배움 18-08-16 14:56
 
국가와 마찬가지로 모든 조직은 조직의 수장이 전략적인 식견을 견지하고 있을 당시 발전하게 된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조직의 수장이 되는 경우 그 조직의 미래는 암울한 것이다.
바람의언덕 18-08-16 17:14
 
미국은 객관적인 자료에 입각하여 분석적으로 대안을 제시하는 국가다. 아메리카 대륙에 입주한 이후 미국인들은 영국에서 물려받은 이 같은 전통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켰던 것이다.
바람의언덕 18-08-16 17:18
 
1985년 미국은 플라자합의를 통해 일본 화폐가치를 대거 높였으며, 1989년에는 슈퍼 301조를 발동시켰다. 이 같은 미국의 노력으로 인해 1991년부터 일본 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들었던 것이다. 이 같은 방식으로 일본의 도전을 굴복시켰다.
바람의언덕 18-08-16 17:19
 
국가와 마찬가지로 모든 조직은 조직의 수장이 전략적인 식견을 견지하고 있을 당시 발전하게 된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조직의 수장이 되는 경우 그 조직의 미래는 암울한 것이다.
바람의언덕 18-08-16 17:22
 
1979년 당시 중국의 1자녀 정책을 구상한 사람은 중국군 무기 설계 전문가였다.
바람의언덕 18-08-16 17:23
 
중국은 공자의 나라가 아니고 한비자가 말하는 법가주의의 나라라고 한다. 기원전 8세기부터 3세기 사이의 춘추전국시대 당시 중국에서는 손자병법, 책략 등 국가안보와 관련된 많은 서적이 나왔다.
바람의언덕 18-08-16 17:24
 
중국에 안보전문가가 없어 시진핑이 사드 미사일의 한반도 배치와 관련하여 과민 반응했다고 한국의 안보전문가들이 언론매체에서 지속적으로 발언했는데 이는 일대 촌극이었다.
향수 18-08-16 19:06
 
상머슴 중국, 중머슴~~
겨울 18-08-16 19:58
 
이는 미국이 자원이 비옥한 방대한 영토를 물려받았다는 사실과, 아메리카 대륙에 미국에 대항할 수 있는 국가가
없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주요 이유는 미국인들이 탁월한 전략적인 식견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겨울 18-08-16 20:00
 
지금까지 논의에서 보았듯이 미국은 철저히 자국 이익 측면에서 전략적인 사고에 입각하여 판단하는 국가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살펴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미국이 계산적이고 전략적임을 알 수 있다.
겨울 18-08-16 20:03
 
국군의 창군 이후 70여 년 동안 대단히 우수한 많은 사람들이 한국군을 거쳐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군은 대전략가, 우수한 군사 이론가를 별로 배출하지 못한 듯 보인다.
선유도 18-08-17 05:38
 
<<미국의 패권국가 성립 과정>>
패권국가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거의 비용을 들이지 않았다.
이유는 미국인들이 탁월한 전략적인 식견을 견지
선유도 18-08-17 05:40
 
<<미국인들이 이론적 측면에서 우수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수학 분야
선유도 18-08-17 05:42
 
미국인들은 영국군에 대항하여 게릴라전쟁을 전개.
베트남전쟁에서 목격된 게릴라 전쟁의 원조가 미국인 것
선유도 18-08-17 05:47
 
<<미국의 전쟁 효과>>
가장 적은 희생으로 1차 세계대전의 결과 측면에서 가장 지대한 효과를 초래한 것
선유도 18-08-17 05:50
 
<<패권국으로 발돋음 하려는 일본을 굴북시키는 미국의 전략>>
슈퍼 301조를 발동
결론은 1991년부터 일본 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들었던 것
선유도 18-08-17 05:51
 
중국은 미국에 못지 않을 정도로 전략적인 식견이 있는 국가
선유도 18-08-17 05:55
 
1980년 당시 중국의 대전략인 '마라톤 전략'을 구상한 대부분의 사람은 중국군 장교
산백초 18-08-17 09:08
 
미국은 객관적인 자료에 입각하여 분석적으로 대안을 제시하는 국가다. 아메리카 대륙에
입주한 이후 미국인들은 영국에서 물려받은 이 같은 전통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켰던 것이다.
산백초 18-08-17 09:13
 
오늘날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무역전쟁은 중국을 굴복시키기 위한 패권경쟁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
'중국제조 2025'를 통해 비상을 추구하는 중국의 비상을 좌절시키기 위한 일대 투쟁인 것이다.
산백초 18-08-17 09:15
 
한편 필자는 중국공군이 운용하는 과학기술 분야 학교를 방문한 바 있다. 박사와 석사 과정 장교
3,000여 명으로 구성되는 이 학교는 미 공군의 Air Force Institute of Technology와 유사해 보였다.
호반도시 18-08-18 05:06
 
미국인들이 이론적 측면에서 우수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수학 분야다.
오늘날 미국은 학생들의 산수와, 고등학생들의 수학경시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적인 수학자, 세계적인 저명 수학 서적을 저술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미국인이다.
미국은 암기가 아니고 초등학생 시절부터 창의적인 능력과 합리적인 사고를 교육시키는 국가다.
호반도시 18-08-18 05:15
 
이미 1차 세계대전을 통해 미국은 지구상 제1의 패권국이 되었지만 패권을 누려본 경험 부족으로 인해
패권적 지위를 행사하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전후 자국이 패권국가로 부상하는 상황에
대비하여 많은 정책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있었다. 전후 이 같은 대안이 그대로 국제사회에 반영된 것이다.
사오리 18-08-21 05:12
 
불교에서는'자리이타'(自利利他)를 말합니다.
나에게 도움 되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
이 되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진정한 도움,
진정한 사랑은 '자리이타'입니다
카오스 18-08-22 04:04
 
미국은 암기가 아니고 초등학생 시절부터 창의적인 능력과 합리적인 사고를 교육시키는 국가다.
이 같은 교육이 바탕이 되어 수학, 과학, 정치학 등 모든 학문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국가안보 문제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객관적인 자료에 입각하여 분석적으로 대안을 제시하는 국가다.
카오스 18-08-22 04:07
 
1차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은 기본적으로 패권국인 영국에 대항한 독일의 싸움이었다.
이 같은 싸움에서 미국은 처음에는 방관자적인 입장을 보이다가 전쟁 당사국 모두가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었을 당시 참전하여 전쟁 결과를 결정지었다.
살짝 추가한 노력으로 낙타의 등뼈를 부러뜨리는 효과를 초래한 것이다.
카오스 18-08-22 04:10
 
결론적으로 말하면 오늘날 미국이 있게 된 것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었다.
미국이 전략적인 식견이 우수한 국가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단기간에 오늘날과 같은
수준이 되었던 것도 대통령들이 일반적으로 전략적인 식견을 견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오스 18-08-22 04:15
 
. "대전략(On Grand Strategy)"이란 제목의 대전략에 관한 중국의 저명 서적을 저술한
사람 또한 군사과학원 소속 장교였다. 중국의 에너지 자원 관리 전략을 수립하는 사람도
중국군 장군이었다. 1986년 당시 중국은 장기적 차원에서의 군사과학및 기술계획을 발전시켰는데
이것을 발전시킨 사람들 또한 중국의 핵무기 과학자들이었다.
각설탕 18-08-23 13:57
 
미국은 암기가 아니고 초등학생 시절부터 창의적인 능력과 합리적인 사고를 교육시키는 국가다. 이 같은 교육이 바탕이
 되어 수학, 과학, 정치학 등 모든 학문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국가안보 문제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객관적인 자료에 입각하여
분석적으로 대안을 제시하는 국가다. 아메리카 대륙에 입주한 이후 미국인들은 영국에서 물려받은 이 같은 전통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켰던 것이다.
각설탕 18-08-23 13:59
 
어느 정도 북아메리카 대륙을 자신의 영향권으로 만든 시점인 1823년 미국의 5대 대통령 몬로는 '몬로 독트린'을 표방했는데
이는 미국이 아메리카 대륙 전체에 대한 패권을 유지하는 국가가 될 것임을 천명한 것이다. 더 이상 유럽이 아메리카 대륙에
식민지를 만들거나 아메리카 대륙 국가들의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는 정책을 미국이 일방적으로 유럽국가에게 선포한 것이다.
각설탕 18-08-23 14:03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일본의 부상이 미국 내부에서 심각한 문제를 초래했다. 1987년 당시
일본의 GDP가 미국 GDP의 70%가 되었다. 일본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란 책을 통해 패권적 의도를 노출시켰다.
여기에 더불어 첨단무기에 사용될 수 있는 반도체분야를 선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1985년 미국은 플라자합의를 통해
일본 화폐가치를 대거 높였으며, 1989년에는 슈퍼 301조를 발동시켰다. 이 같은 미국의 노력으로 인해 1991년부터 일본 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들었던 것이다. 이 같은 방식으로 일본의 도전을 굴복시켰다.
각설탕 18-08-23 14:12
 
오늘날 중국은 인터넷과 구글을 차단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중국 일반 대학 교수들의 경우 또한 최신 정보를 제대로
접하지 못하는 측면도 없지 않은 듯 보인다. 이 같은 사실을 보면서 서방사회의 사람들은 중국의 국가안보 관련 전문성이
 매우 낙후되어 있는 것으로 판단하는 경향도 없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중국에는 중국군 장교들만이
구입이 가능한 서적이 있다. 중국군 장교들의 경우 지구상의 모든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입장이다.
아사달 18-08-26 11:29
 
미국은 암기가 아니고 초등학생 시절부터 창의적인 능력과 합리적인 사고를 교육시키는 국가다.
이 같은 교육이 바탕이 되어 수학, 과학, 정치학 등 모든 학문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국가안보 문제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객관적인 자료에 입각하여 분석적으로 대안을 제시하는 국가다.
아메리카 대륙에 입주한 이후 미국인들은 영국에서 물려받은 이 같은 전통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켰던 것이다.
아사달 18-08-26 11:30
 
미국인들의 전략적인 식견은 영국에 대항한 독립전쟁 당시부터 나타났다.
미국인들은 영국군에 대항하여 게릴라전쟁을 전개했다.
 베트남전쟁에서 목격된 게릴라 전쟁의 원조가 미국인 것이다.
은밀한 곳에 숨어 있다가 영국군을 기습 공격했다.
이 같은 공격에 대항하여 영국군은 미국의 게릴라들을 추적할 수 없었다.
미국이란 대륙이 너무나 넓었기 때문이다.
아사달 18-08-26 11:31
 
패권국을 겨냥한 미국의 전략적 시각이 두르러지게 나타난 것은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였다.
당시 미국은 전쟁 당사국들이 사력을 다해 싸운 결과 전력이 거의 모두 소모된 상태에서 전쟁에 참전하여
전쟁의 향방을 바꾸어 놓았다. 낙타 등에 조그마한 것을 첨가했지만
이 같은 첨가가 낙타의 등뼈를 부러뜨리는 효과를 초래한 것이다.
아사달 18-08-26 11:32
 
사드 미사일이 한국에서 크게 논란이 되었을 당시 예비역 육군대령 출신  박OO는
사드가 중국 안보와 전혀 관련이 없는데 시진핑이 전문성이 없는 사람들로부터 사드에 관해 보고를 받아
그처럼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언론매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말했다.
이 같은 말을 들으면서 솔직히 필자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한국의 주요 언론매체를 통한 이 같은 보도를 들으면서 중국인들이 한국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아사달 18-08-26 11:33
 
오늘날 중국군 장교들이 중국의 대전략 등 개념적인 서적을 대거 저술하고 있으며,
이 같은 일을 하는 장교들이 군에서 장군으로 승진하고 있다.
게리 18-08-26 16:03
 
미국은 암기가 아니고 초등학생 시절부터 창의적인 능력과 합리적인 사고를 교육시키는 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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