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판화가 폴 쟈꿀레(Paul Jacoulet, 1896-1960)의 작품으로, 2006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기도 했던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을 보면, 조선 말기엔 여인들이 가슴을 내놓고 다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800년대말-1900년대 초 사진
이 사진에 관한 이야기는 2007년 8월 19일에 방영된 SBS 스페셜 96회, '일제사진, 그 비밀과 거짓말' 편에서 자세히 알 수 있다 (링크는 맨 아래 참고자료에 걸겠다, 본문 중간에 거는게 귀찮아서).
방송에서 나온 이 사진들에 대한 사연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이 사진은 일제가, 조선은 원시적인 국가고, 일제에 의해 근대적인 국가로 계몽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찍은 사진들 중 일부로, 그림엽서로 제작되어 널리 쓰이게끔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라 한다.
일제는 이런 사진들을 통해, 조선 통치의 당위성과 함께, 원시 조선의 섹슈얼한 호기심을 세계적으로 불러 일으키고자 의도했다.
그렇다면 독일 기자가 찍은 것도 연출인가?
조선시대의 여성들 "가슴을 내놓고 다니는 여인".독일 기자 지그 프레드 겐테 (1901)
1800년대말에서 1900년대초의 여인 사진
조 선시대에는 딸을 낳으면 크게 환영받지 못한데 비해, 아들을 낳으면 집안의 경사일뿐만 아니라 아들을 낳은 여인은 '누구 누구의 모친'이라는 경칭을 얻고 시댁에서의 발언권이 확실해진다. 이런 가부장적 태산(胎産) 문화 속에서 심지어 전녀위남법(轉女爲男法)이란 비법도 유행했다. 전녀위남법이란 '임신 중 여아를 남아로 바꾸는 방법'을 말한다 가문을 이을 자손을 낳지 못하면 소박맞는다는 생각이 널리 펴져 있었던 시절, 후사를 잊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기울이게 되고 그 가운데 '임신 중여아를 남아로 바꾼다'는 이른바 전녀위남법을 시행하게 된 것이다. 이런 문화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가슴을 내놓고 다니는 여인들'이다. 가슴을 내놓는 행위는 젖먹일 아들이 있음을 과시하는 것이었고 흠이 되지 않았다.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조건이었던 것이다. 서양인들의 기록에는 매우 흥미롭게 이러한 여인들을 기록하고 있다.
부 산에서 서울까지 오는 도중에나 서울에 있는 동안에도, 밖에 나와 있는 여자들이 드물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밖에 나와있는 여자라 할지라도 대부분이 독특한 방식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얼굴을 가리지 않은 여자일 경우에는 젖가슴까지 내놓고 있었다. 얼굴을 가리지 않은 여자일 경우에는 매우 박색인 까닭으로 처음에는 이 사실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손 그렙스트 『코레아 코레아』1904)
아들 낳은 자랑과 젖 먹일 남자가 있어서 가슴을 내밀었다는 사진
부자집 아낙까지도 가슴을 드러낸 사진
※ 혁명은 증산상제님의 갑옷을 입고 행하는 성사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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